[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2013년 10월 22일,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포수로 불린 박경완의 신분은 더 이상 선수가 아니었다. 현역 은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SK 와이번스의 퓨처스(2군) 감독으로 지도자가 됐다. 하루아침에 23년 동안 프로 생활을 정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시원섭섭했을 터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더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박경완은 22일 “은퇴를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고 힘도 들었다. 다른 팀으로 떠나 선수 생활을 연장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SK에서 깔끔하게 지도자로 출발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내가 그렇게 원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지도자 생활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박경완은 다른 팀으로 이적해 선수 생활을 연장하기보다 깔끔하게 지도자로서 새 출발을 하기로 결심했다. 사진=MK스포츠 DB |
‘선수’ 박경완은 불멸의 스타였다. 4연타석 홈런, 포수 첫 20(홈런)-20(도루) 클럽 가입 등 수많은 기록을 세웠다. 그렇지만 박경완이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기록은 포수 포지션과 관련된 게 아니었다.
박경완은 “애착이 가지 않는 기록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포수 홈런이나 4연타석 홈런을 이야기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애착이 갔던 건 팀 평균자책점이었다.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니 애증의 관계가 되더라. 때로는 날 웃기기도 슬프게도 만들었다”라며 껄껄 웃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박경완은 “많은 기록을 세웠지만 SK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 떠오른다. 1,2차전을 내리 패하며 다들 안 된다고 했지만 선수단이 하나로 뭉쳐 4연승을 했다. 감동이 있다는 게 스포츠에 있어 최고이지 않나 싶다”라고 했다.
먼저 구단을 찾아가 은퇴 의사를 밝혔던 박경완에게 SK는 퓨처스 감독직을 제의했다. 선수로서 오랫동안 뛰었고 공헌한 바가 많다고 하나, 지도자 경험은 아예 없었다. 보통 코치 연수를 떠나는 것을 고려하면 파격적이었다.
박경완은 “제의를 듣고 만감이 교체했다.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 내가
박경완은 “젊은 선수들과 잘 융화해 SK의 미래 전력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겠다.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할 것이다. 23년간 쌓은 노하우를 살려 진정성 있게 선수들을 지도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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