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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메이퀸’을 마치고 휴식기를 갖고 있던 김재원을 만났다. ‘메이퀸’ 속 강산의 능글맞은 너스레는 흡사 그의 것과 같았지만, 프로페셔널하고 날카로운 판단력 또한 김재원 그 자체였던 듯 싶다.
마치 해탈한 듯 한 모습의 김재원은, 그 스스로 밝힌 오랜 ‘담금질’의 시간을 지나 보내며 그렇게, ‘스타’를 뛰어넘어 자기만의 색깔 있는 ‘배우’로 발돋움했다.
“드라마 끝나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지인을 만나며 휴식기를 보내고 있어요. 예전에는 작품에 대한 여운이 굉장히 강했는데, 지금은 금세 잊게 되더군요. ‘메이퀸’을 찍을 땐 굉장히 즐겁게 촬영했고, 이제는 기존의 것을 지우고 새로운 작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초겨울부터 매서웠던 추위만큼이나 뜨거웠던 ‘메이퀸’의 기억은 어느새 그에게 ‘추억’이 된 듯 하다. “당시로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는 김재원은 “최선을 다한 만큼 지금은 바닥이 났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나를 채워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01년 시트콤으로 출발한 연기 인생. “처음엔 멋모르고 시작했지만”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연기에 대한 가치관이 생기게 되더라는 그다. 2003년 울트라급 히트를 친 드라마 ‘로망스’로 스타 반열에 오른 김재원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기에 부침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는 “인생이란 게 계속 평탄할 수만은 없지 않나”며 지나온 연기 인생을 되돌아봤다.
“다수의 작품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인터뷰에서 ‘다음엔 남자다운 걸 해봐야겠다’는 얘기를 습관처럼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연기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힘이 들어가더군요. 잘 하려고 무리하게 힘을 주다 보니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반응도 나왔죠. 결과적으로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일도 생겼고, 이후 의기소침하게 시간을 보내게도 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군대를 다녀와서 ‘내마음이 들리니’를 하게 됐어요.”
지나고 보니 배움의 과정이었지만, 당시로선 힘든 시기였던 그 작품은 바로 ‘황진이’였다. “‘황진이’ 이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너무 많이 쉬었어요. 4~5년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보냈는데, ‘내마들’ 이후 다시 연기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게 됐죠.”
군 전역 후 컴백작이던 ‘내마들’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재원에게는 또 한 번 시련이 찾아왔다. 첫 촬영, 오토바이 씬에서 사고로 어깨 부상을 선물(!)한 드라마 ‘나도 꽃’이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는데 부상으로 인해 또 못 하게 되니까 정말 많은 감정이 들더군요. 마음을 거의 내려놓게 됐죠. 그러다 ‘메이퀸’ 백호민 감독님을 만났어요.”
김재원은 “내 마음 속 의욕과 열정, 시련이 담금질을 여러 번 하다 보니,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것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더라. 다 때가 있는 것 같고 시기가 있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연기 변신에 대한 주위의 요구에 대해서도 ‘만만디’다. “급해서 될 것도 없고, 급하면 체할 뿐”이라는 입장이다. 김재원은 도리어 “앞으로 살날이 40년, 50년 남았는데, 하루 이틀 연기할 것도 아니고. 연기 변신이란 건 내년에 할 수도 있고 5년 있다 할 수도 있고 또 이순재 선생님처럼 ‘야동순재’로 아주 나중에 할 수도 있지 않나”고 반문했다.
“연기자로서 색깔에 대해 많은 분들이 조언해주시는데, 저는 저만의 색이 있다. 정말 수많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천의 얼굴 가진 연기자도 있지만 특정한 색으로 각인 시킬 수 있는 연기자도 있잖아요. 가령 국민배우로서 사랑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국민배우만큼의 사랑받는 건 아니지만 하나의 캐릭터가 강한 사람도 분명 필요하고요.”
그렇다면 김재원이 생각하는 자기만의 색은 무엇일까. “저는 가족의 소중함, 따뜻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좋아요. 주위에서 더 남자답고, 선 굵은 작품을 찍어야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듣는데, 그런 건 나보다 훨씬 잘 생기고 멋있고 액션 잘 하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전 그분들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없어요.(웃음)”
“저는 작품을 통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해피 바이러스를 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렇다 보니 작품에서도 긍정적인 인물을 맡게 되죠. 주위에서 ‘나쁜남자 한 번 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데, 저는 나쁜남자가 싫어요. 연기를 해보니까, 그 역할을 맡으면 제가 그 인생대로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가령 6개월간 나쁜남자를 해보니 행동도 말투도 생각도 다 나쁜남자가 되고, 그렇게 제 인생이 피폐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웃음). 제 인생, 미래의 제 가정을 위해서라도 훈훈하고 가족적인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멀찌감치 열어줬다. 다 때가 되면 한다는 것이다. “결혼도 그렇죠.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시간이 되면 하겠죠. 결혼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게 없는 것 같아요. 결혼을 위해서라도 연기자 생활을 바르게 하고 싶어요.”
지난 연말 MBC 연기대상에서 선보였던 탁월한 진행 능력에 반한 몇몇 방송 관계자들 사이은 김재원을 ‘예능 블루칩’으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김재원은 연기 한 우물을 파겠다는 입장을 공고히 했다.
“가령 설렁탕집이 잘 되니까 옆에 스파게티 가게도 낸다면? 설렁탕집 고유의 색을 잃어버리고 유명세나 명예도 같이 잃게 되지 않을까요. 대중을 만나는 데 있어서 예능으로의 접근도 물론 나쁘지 않지만 처음 시작했던 게 연기이기 때문에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성공 가능성이 높게 점쳐짐에도 불구, 예능을 고사하는 그의 생각은 바꿔 말하면, 연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기도 했다.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14년간 연기자로 살면서 그 누구보다 배우의 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예능인으로서의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그 가치관이 없는 상황에서 접근하면, 그건 망하는 장사죠.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해 온 연기자로서 다가가는 게, 배우로서 가장 좋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