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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보다 할배’ 보다 이서진
먼저 ‘꽃보다 할배’는 H4라는 애칭의 노배우 4명,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이 배낭여행을 떠나는 내용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제목에 드러나 있듯 당연히 주인공은 ’할배’ 네 사람이다. 하지만 실제로 방송을 이끌어가는 것은 ‘짐꾼’으로 투입된 배우 이서진이다.
‘꽃보다 할배’는 이서진의 고생 버라이어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꽃보다 할배’는 H4 네 명의 분량을 합한 것보다 이서진의 분량이 많을 만큼 그의 비중이 크다.
갈등과 드라마, 재미 역시 이서진이 만든다. 이서진은 제작진에게 속아 여행에 동참하고, 대선배들의 눈치를 보며 여행계획을 세우고, 루브르 박물관, 기차역 티켓창구 앞에서 줄을 선다. 렌터카를 빌려 20년만에 수동기어 자동차를 운전하고, 생전 해보지도 않은 요리를 한다. 스위스에 있는 한지민을 섭외하고 한지민이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당황하는 것도 역시 이서진이다. 이서진이 없이 ‘꽃보다 할배’는 아무런 에피소드도 만들지 못한다.
여행비를 걸고 이순재와 박근형이 제작진과 고스톱을 하는 장면에서도 분명 에피소드를 이끄는 것은 이순재, 박근형이지만 카메라는 끊임없이 구석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이서진의 표정변화에 주목한다.
소위 리얼리티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는 방식은 단순하다. 황당한 상황을 제시하고 그 상황에서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담는 것. ’꽃보다 할배’의 H4는 ’이서진 고생기’ 속 일종의 장치가 되는 셈이다.
◯ ‘방송의 적’의 적은 존박
Mnet ‘방송의 적’ 역시 주목을 받고 있는 출연진은 주인공 이적이 아니라 ’덜덜이’ 존박이다. 제작진이 “이적보다 존박이 훨씬 재미있는데 존박쇼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내용의 회의를 에피소드 중 하나로 구성할 만큼 존박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이는 페이크 리얼리티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적은 ‘방송의 적’에서 평소 이미지를 깨고 다소 능글맞고 어눌한 모습을 과장해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쌓아온 고유의 이미지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 반면 ‘슈퍼스타K2’를 통해 얻은 존박의 유학파 엘리트 이미지는 대중들에게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쉽게 전복이 가능하다. 전복에서 오는 임팩트도 보다 유쾌하다.
예를 들어 이적의 경우 뭘해도 ‘연기하는 것 일거야’는 느낌을 받는다면 존박은 ‘진짜 저래?’ ‘저런 것도 해? 확 깬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는 것. 두 사람이 보여주는 연기력의 차이기보다는 ‘가짜 리얼리티’인 까닭에 오는 차이다. 존박은 이적에 비해 페이크 리얼리티에서 훨씬 유리한 지점에 있다는 것.
‘방송의 적’ 방송 이후 존박은 예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중이다. ‘저런 것도 하는’ 존박을 탐내는 예능 PD들이 많은 까닭이다. 존박은 최근 MBC ‘무한도전-여름 예능 캠프’에 출연했으며 SBS ‘런닝맨’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9일부터는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임시 DJ를 맡는다.
◯ ‘이효리(는 스피카)의 X언니’
‘이효리의 X언니’는 이효리가 소속사 후배가수 스피카를 프로듀싱하는 과정을 그린 4부작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결혼이 임박한 이효리와 이상순의 평소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공개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첫 방송에서 시청자들의 기대대로 두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이상순은 자연스럽게 이효리의 집을 방문하고, 함께 청계산에 놀러가고, 지인의 매장 오픈 파티에 동행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이효리도 이상순도 아닌 걸그룹 스피카다.
‘이효리의 X언니’는 그 동안 케이블 채널에서 쉽게 접하던 아이돌 가수들의 데뷔과정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가깝다.
실제로 카메라는 스피카에 집중한다. ‘이효리의 X언니’는 스피카가 자신들의 현재 처지와 한계, 문제점들에게 대해 털어놓으면서 시작한다. 스피카는 자신들의 문제를 극복할 조력자로 이효리를 떠올린다. 이어 이효리를 찾아 공연장과 집을 쫓아다니는 모습이 연출된다. 당연히 스피카 멤버들의 감정상태 대한 인터뷰가 수시로 진행된다.
반대로 이효리를 쫓는 카메라는 이효리를 멀찌감치서 관찰하기만 할뿐 직접적으로 이효리와 대화하지 않는다. 이효리의 심정은 곁에 있는 이상순과 대화에서 얼핏 짐작만 할 수 있을 정도 수준이다.
단 앞서 ‘꽃보다 할배’나 ‘방송의 적’이 의도치 않게 조연이 부각됐던 것과 달리 ‘이효리의 X언니’는 애초 주인공 스피카를 이효리 뒤에 숨겼다는 차이가 있다. 의도적인 주객전도인 셈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