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방송인 조영구, 김생민, 박슬기 등은 대표적인 TV리포터다. 오랜 시간 지상파3사 연예프로그램에서 터주대감처럼 자리를 지키며 시청자에게 ‘TV리포터’란 개념을 각인시켰다. 또한 리포터는 최근 몇 년 새 신인 스타들이 얼굴을 알리기 위해 거치는 관문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외국에선 ‘보도기자’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과 달리 아나운서와 방송인 사이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리포터는 언제부터 국내 방송가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것일까.
업계에서는 이들의 활발한 활동 시점을 1980년 초반부터로 보고 있다.(오태수 ‘TV리포터는 누구인가’ 2000년)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정부가 전력 사용량 절감을 위해 아침 방송을 폐지했지만, 1981년 5월 이 프로그램들이 부활하면서 방송사는 급하게 많은 인력을 찾게 됐다. 이어 같은 해 9월 KBS2 생활 정보 프로그램인 ‘상쾌한 아침입니다’부터 전문 리포터가 등장하면서 TV리포터 시대가 열렸다. 이후 KBS1 ‘생방송 전국은 지금’, ‘전국일주’ MBC ‘차인태의 출발 새 아침’ ‘기차타고 세계여행’ 등 각종 정보프로그램들이 쏟아지면서 리포터 숫자는 더욱 늘어나게 됐다.
1991년 SBS(당시 서울방송)가 방송을 시작하면서 이들의 판은 더욱 커지게 됐다. MBC, KBS에 비해 늦게 문을 연 SBS 는 예능, 드라마 못지않게 생활정보 중심의 교양 프로그램을 강화하면서 시청자 사로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다른 방송사 역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주부 시청자층이 탄탄한 생활 정보 교양 프로그램에 따분하기 쉬운 콘텐츠를 재미있게 전달해줄 리포터들을 전면 배치하며 경쟁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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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이주영 |
방송사의 적극적인 리포터 기용은 전문 리포터 양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전까지는 2030대 여성들이 전문적 지식이나 방송 경험 없이 인맥을 이용해 리포터가 됐다면, 방송 3사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리포터 양성 기관도 마련됐다.
1992년 초 당시 방송인력 양성기관인 시네텔 서울에 20대 초반의 대졸 혹은 졸업예정자 10여명에게 방송 리포터 교육을 실시했던 것. 6개월간 교육을 통해 발음·발성, 현장실습, 의상·분장술 등 리포터가 되기 위한 10여개 과목을 교육받았다. 아직까지도 전문 양성 학원은 없지만 아나운서 양성 기관 산하에 코스가 마련된 건 이때부터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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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BS 방송 캡처 |
이와 함께 리포터가 신인 스타들이 경험 쌓기 위한 필수코스로 인식된 건 1993년부터다. 당시 유하영, 이승연, 우정아, 김남주 등 미스코리아 출신들이 대거 리포터로 등장하며 인기몰이에 성공했고, 이후 스타가 되고 싶은 이들이 모이는 자리가 됐다. 정기적으로 TV에 나오고 말솜씨나 재치를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얼굴을 알리고픈 신인 스타들에겐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2000년대 초반 케이블 방송사들이 개국하고 이후 종합편성채널 방송사까지 가세하면서 리포터 활동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또한 외주제작사들의 콘텐츠 제작도 늘어나면서 이들을 기용하는 일도 잦아졌다. 방송 인력의 대체로 등장했지만 화려한 말솜씨와 친근감을 무기로 급격하게 성장한 셈이다.
이처럼 방송리포터는 34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또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방송인과 아나운서 사이 중간자적 입지와 프로그램 서브 출연진이라는 시선 때문에 사회로부터 전문성을 인정받진 못하고 있다. 아이돌이나 배우, 개그맨들의 유입으로 특화된 전문성을 인정받기 보다는 진입 장벽이 낮다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또한 종사자들만의 노조나 단체가 없어 이들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기도 한다. 소속 없는 이들이 대다수라 의상·메이크업부터 프로그램을 구하고 활동하는 것 역시 ‘나홀로’ 행보를 걷는 이들이 즐비한 실정. 이 때문에 제작진과 갈등이 생겨도 계속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한발 양보하거나, 혹은 일방적 하차를 통보받기도 한다. 방송가 주요 직종으로 떠오른 것에 비해 떨어지는 처우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