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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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경력 30년의 최민식은 이제껏 연기를 해오면서 "영화 '명량'처럼 강박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이순신 장군을 알고 나니 함부로 연기 못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분의 위대한 업적, 신념, 생각, 분노, 슬픔이 허구가 아니라는 생각에 경외심을 느꼈다." "'네가 이순신을 어떻게 연기하나 보자'라는 대중의 생각은 둘째치고, 그분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강박이었다"는 최민식.
역사적 인물을 연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앞서 영화 '취화선'에서의 장승업은 편했다. 아니, 즐거웠다. 그림을 그렸던 인물과 연기를 하는 자신 사이에 어떤 교집합이 있었다.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긴 했지만 '명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촬영 내내 스트레스는 줄어들지 않았다. '명량'은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민식은 여전히 고민의 흔적이 뚜렷이 드러났다. 더불어 영화를 향한 믿음도 강하게 전해졌다. "이 영화는 모두가 결말을 알잖아요. '고루하다, 별거 없네'라고 받아들이는 분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했던 생각, 제작의도, 배우들의 진심 등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거창할 수 있지만 이렇게 위대한 분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자부심 좀 가져봤으면 합니다. '애국주의 마케팅이냐'라는 지적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 없어요. 하지만 일본이 여러 망언을 하는 시점에서 이런 영화가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사실 최민식도 '명량'이 영화화되는 것에 긍정적이지 못했다. 김한민 감독이 그를 만나러 왔을 때 고개부터 저었다. 이미 드라마로 나온 적 있고, 80%가 넘는 젊은 관객층이 좋아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한민 감독의 역사관에 전율을 느꼈고, 설득당했다. 소주를 들이켜고 의기투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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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지만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치를 당시 나이와 최민식이 '명량'을 촬영한 나이가 53세로 같다. 운명이었나 보다. "운명이라기보다는 인연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장군님과 이렇게 인연이 됐고, 김 감독ㆍ배우들과도 인연이 됐고요. 수백 년이 흐른 뒤 내 몸을 빌려 그분을 표현하게 된 것도 인연이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굉장히 신기해요. 다른 상업영화 할 때와는 달랐죠. 나도 모르게 예의를 갖췄고, 미천한 우리가 장군님을 표현하고자 모였다고 씻김굿도 하게 됐죠."
용맹한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의 반전 하나. 바다 위에서 싸웠건만 그는 물을 무서워한다고 고백했다.
"사실 물 엄청나게 무서워해요. 청평에서 한 번 빠진 적이 있어요. 어떻게 바다 위에서 촬영할 수 있었느냐고요? 안 빠질 줄 알았어요. 하하. 또 물보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또 날이 엄청나게 추웠거든요. 밑에서는 휘발유 냄새가 너무 나더라고요. 그때는 물이 무서운 것보다 추위에 떤 게 더 심했어요."(웃음)
앞서 김 감독은 이 영화와 관련한 3부작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다. 최민식은 "'응원하겠다'고만 했다"고 한다. 왜 안 하느냐고 하니 이 작업이 힘들었는지 "어떻게 또 할 수 있느냐"며 "분위기 몰고 가지 말라"고 엄살을 피웠다. 그러면서 "다른 배우도 이순신 장군 역할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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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은 성웅 이순신 장군이 수적 열세에도 왜군을 무찌른 역사적 사실, 1597년(선조 30년) 9월 16일 명량에서 단 12척으로 330척의 왜선을 무찌른 '명량대첩'을 담아냈다. 영화는 이 역사 그대로,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우직하게 풀어나간다.
jeigu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