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의원까지 소환하면서 사실상 마무리에 들어갔던 회의록 논란이 뜻밖의 일로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그라들던 논란의 불씨를 키운 건 다름 아닌 검찰이었습니다.
회의록 사건을 총괄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 휘하에는 공안1부와 2부가 있습니다.
공안 1부는 현재 회의록 내용 유출 사건을 수사하고 있고, 공안 2부는 회의록 실종 사건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공안 2부 수사팀은 문재인 의원까지 소환하면 수사를 마무리지을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의원이 소환되는 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당 국회의원
-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NLL을 확실히 지켰습니다. 멀쩡히 살아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는 잡으라는 도둑은 안 잡고 오히려 신고한 사람에게 너는 잘못이 없느냐라고 따지는 격입니다."
문재인 의원이 말한 '도둑'이란, 다름 아닌 지난 대선에서 회의록 내용을 몰래 보고 선거에 악용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민주당이 소송을 제기한 김무성, 권영세, 정문헌, 서상기 의원을 뜻합니다.
바로 공안 1부가 수사하고 있는 사건이죠.
그리고 신고한 사람은 문재인 의원을 비롯해 회의록 실종에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공안2부가 맡고 있는 실종 사건은 수사가 마무리단계에 있는데, 공안 1부가 맡고 있는 불법 유출 수사는 진척이 없으니 어찌된 일이냐는 문재인 의원의 항의였습니다.
제1야당 대선 후보였던 사람의 항의였으니, 검찰로서도 입장을 내놓을 수 밖에 없겠죠.
게다가 일부 언론은 검찰이 김무성 의원에 대해 서면조사를 했다고 보도까지 했습니다.
당장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 측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대선 후보이자, 참고인 신분인 문재인 의원은 공개 소환하고, 피고발인 신분인 권영세 김무성 의원은 서면조사를 했다는 걸 문제 삼았습니다.
서면조사는 사실상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히니까 말입니다.
어제 시사마이크에 출연했던 김경수 봉하재단 본부장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경수 / 참여정부 전 연설기획비서관
- "대선 후보였던 분은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하고, 선거캠프의 선대본부장 상황실장은 서면조사로 하고, 이게 국민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불공평하다고 보느냐) 불공평할 뿐 아니라 검찰의 수사 방향이 미이관 문제에 너무 집중돼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정치적 편향의 의심을 받고 있는게 아니냐. 미이관 문제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으니, 불법 유출의 문제에 대해서도 검찰이 적극 수사에 나서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습니다.
두 사건을 모두 총괄하는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기자들에게 이런 해명을 내놨습니다.
"권영세 주중 대사는 서면조사했다. 중국에 나가 있는 상황이라. 김무성 의원은 아직 조사 방법 결정하지 않았다. 서면조사 안했음."
김무성 의원에 대해 서면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검찰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정치권에서는 전혀 다른 말들이 나왔습니다.
김무성 의원 실에서는 국감 기간 중 검찰의 서면조사 질의지가 와서 지금 작성 중에 있고, 소환이든 뭐든 적극 수사에 응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겁니다.
이진한 2차장이 말한 것과 다릅니다.
머쓱했진 이진한 2차장은 또 해명을 내놨습니다.
"서면 조사 답변이 안 왔는데, 서면 조사했다고 할 수도 없고, 서면 조사 진행 중이라고 공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양해해 달라"
서면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처음의 말과 답변서가 오지 않았다는 말은 분명 다릅니다.
2차장 검사가 서면조사 사실을 감추려 한 것일까요?
2차장 검사의 말이 단순 실수였다 하더라도, 김무성 의원이 서면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검찰이 수사를 불공정하게 하고 있다는, 그래서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야당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 됐습니다.
검찰이 야당을 도와준 셈입니다.
검찰이 의혹을 오히려 부풀린 셈입니다.
민주당은 오늘 하루 국회 업무를 중단하고 의원 전원이 검찰청으로 몰려가 항의했습니다.
▶ 인터뷰 : 전병헌 / 민주당 원내대표
- ""검찰이 참고인은 공개소환하고 피의자는 서면조사했다. NLL대화록 수사가 공정한지 묻고 싶다."
새누리당은 본의 아니게 난처한 처지에 몰렸습니다.
김무성 의원이 소환 조사를 거부한 것도 아닌데, 검찰의 어처구니 없는 해명으로 불필요한 공평성 논란이 일었고, 마치 수사를 흐지부지 만들려는 시도로 비쳐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민주당이 주장하는 특검 요구는 정치적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 인터뷰 : 윤상현 /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 "야당이 주당하는 사안들은 야당 스스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검찰수사다. 진행중 현재 수사중인 사안이다. 특검대상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사법부의 판단과 또 검찰수사를 지켜봐야 할 때이다."
검찰은 뒤늦게 김무성 의원을 다음주 소환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졌습니다.
공정한 수사로 회의록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끝내야 할 검찰이 신중치 못한 태도로 오히려 정치적 논란을 키운 셈이 됐습니다.
나중에 수사결과가 나와도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길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김무성 의원과 새누리당을 더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설마 검찰이 이런 상황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겠죠?
의도했다면 정치검찰이고, 단순 실수였다면 정말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