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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다고 했다. “유독 대중과 기자들의 머리에 그 영화의 이미지가 각안되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이게 다 ‘내 사랑 내 곁에’ 때문이라니까요” 하며 농 섞인 엄살을 내놓는다. 3년 전 출연 한 박진표 감독의 ‘내사랑 내곁에’에서 루게릭병 환자 연기를 위해 20㎏을 감량,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다.
그는 작품 속에서 혹독하리만큼 캐릭터와 일체화시켜왔다. 스스로는 손발이 오그라든다고는 하지만, ‘리얼리즘 연기자’ ‘연기본좌’ 등은 단순한 연기대상 배우에게 붙여주는 애칭만은 아니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페이스 메이커’에서 역시 실제 마라토너 같다. 영화 속 배경이기도 한 런던 올림픽에 김명민이란 배우가 나가도 금메달을 따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현실 속 김명민과 스크린 속 ‘주만호’는 엄청난 간극을 가진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러닝타임 내내 그는 처절하고도 고독한 페이스 메이커였다.
‘페이스 메이커’는 평생 다른 선수의 페이스 조절을 위해 뛰어온 마라토너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직 자신만을 위해 42.195km를 완주하는 ‘감동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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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시나리오가 우여곡절 끝에 내 손에 들어온 것은 하늘이 점지해주는 인연이라고 봐요. 또, ‘주만호’와 제가 너무 닮았더군요. 마라토너와 배우의 길은 닮은 점이 많아요. 홀로 고독하게 싸움을 벌인다는 것,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는 점.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편한 ‘주만호’처럼 저도 지난 2002년 ‘스턴트맨’이란 영화를 찍다 다리를 다쳤다는 공통점이 있죠. 힘들게 사투하는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어요.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북받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것에 감흥을 느꼈다면 끝난 거죠.”
‘주만호’는 퇴물 마라토너이자 루저다. 인공치아를 끼고, 발음을 어눌하게 바꿨다. 3개월간 매일같이 뛰며 마라토너의 몸을 만들고 주법을 익히기 위해 두달간 지옥같은 훈련을 받았다. 한 테이크에 800m 이상씩은 뛰었다. “극중 90% 이상이 달리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마라토너의 몸이 되지 않으면 안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연기고수’인 그는 유독 신인감독(김달중 감독)과의 작업이 잦다. “신인감독이라도 수십억원대 영화 감독으로 발탁될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감독을 전적으로 믿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의 엔딩만은 “죽어도 그렇게 가자고 고집했다”고 했단다. 대본을 읽으면서 마지막에 떠올랐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98% 분들이 이 영화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는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요.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그런 꿈들을 열정을 가져보시라는 메시지가 정확히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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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은 자신의 연기인생을 ‘불멸의 이순신’ 전과 후로 구분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3년 동안 영화 세 편이 나란히 엎어지면서, 몸도 마음도 병들었다. 3~4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뉴질랜드 이민 계획도 구체적으로 세웠다.
그냥 “이순신만 끝내고 가자”고 다시 시작했던 배우생활. 이후 탄탄대로를 달리며 선 굵은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작품에선 별 흥행 재미를 못 봐도 그의 연기엔 늘 찬사가 쏟아졌다.
“그래서 자기 혼자 튀려고 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저는 연기할 때 상대에 대한 배려와 호흡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혼자 튀려고 했던 적이 없어요. 상대가 죽으면 저도 의미가 없고 같이 죽는 거니까요. 카메라가 앵글을 잡을 때 올림픽에 나간 한 팀이라고 생각해요. 복식조라고 생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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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걸 알았다면 신이 되어서 날아갔을 것”이라거나 “‘인간극장’이란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극사실주의 연기다. 대본이 없고 격렬하지 않은 데도 물밀 듯이 밀려오는 감동들이 있다”는 진지한 설명들은 배우 김명민의 가장 큰 고민인 듯 했다.
“저는 늘 연기를 할 때 시나리오 속 허구 인물이 아니라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연기해요. 배우는 그 사람을 취재해서 대신 연기해주는 것이고요. 저에게 ‘페이스 메이커’는 “단소리 보다 쓴소리를 하는 분들이죠.”
한 편의 작품을 끝내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상당한 데미지(damage)를 겪는다. 그런데도 흥행에 대해선 여전히 편안하다. “과정에서 주로 성취를 얻는 타입이어서 스스로 이상하다 싶으면 아무리 옆에서 띄워줘도 굉장히 절망한다”는 게 그의 스타일이다.
그는 ‘페이스 메이커’ 개봉을 앞두고도 여러차례 “내 연기를 기대하지 말고 영화를 기대해 달라”고 강조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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