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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18일, 전라도 광주에서 계엄군에 의해 벌어진 참사.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하게 짓밟고 살해한 잔혹한 날이 아니던가. 전라도민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분노하기에 충분한 사건을 소재로 했다. 부모나 자식, 누나, 형, 동생을 잃은 사람들은 아직도 땅을 치며 통탄한다. 그 피해자들의 아들, 딸, 동생들이 과거 그 일을 진두지휘한 사람을 처형하기 위해 모여 계획을 세운다는 설정이라니….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낼 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26년’은 1980년이라는 과거보다 26년이 지난 후의 아들과 딸의 모습, 거사를 치르기 위해 일을 꾸미고 힘을 합하는 사람들의 현재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조직폭력배 진배(진구), 국가대표 사격선수 미진(한혜진), 현직 경찰 정혁(임슬옹), 사설 경호업체 실장 주안(배수빈)의 공통분모는 이 영화 존재에 힘을 싣는다.
영화는 또 다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당시 계엄군의 아프고 괴로운 심정까지 담아내려 했다. 이 영화를 이경영이 연기한 대기업 회장 갑세의 참회록으로도 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계엄군 출신이자 이 거사를 계획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진배와 미진, 정혁, 주안보다 비중은 높지 않지만 꼭 필요한 캐릭터다. 갑세는 부모를 잃은 주안을 아들로 삼았고, 아버지와 아들은 그 사람 단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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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고 아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들의 가족으로 나오는 이들도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특히 이 작품이 개봉될 수 있기를 4년 동안 기다리며 묵묵히 준비한 진구는 조직폭력배로 열연한다. 몸을 사리지 않고 액션과 뜀박질은 기본이다. 다혈질이긴 하지만 사람 냄새나는 진배는 슬프고 아픈 영화 속에서 이따금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강렬한 눈빛으로 상대를 쏘아보고 담담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미진 역의 한혜진, 돈 많은 부모 밑에서 번듯하게 자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피해자였던 주안을 연기한 배수빈, 계엄군에 의해 누나를 잃었건만 경찰이 돼 증오의 대상인 그 사람을 지켜줘야 하는 자괴감에 혼란스러워하는 정혁을 제대로 연기한 임슬옹은 모두 최고의 몰입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각 인물들은 긴장감을 유발시키며,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극 초반 과거의 학살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해 사실적인 묘사를 떨어뜨린 점이 아쉽지만,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건 장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리 실사로 리얼하게 표현한다고 해도 그 날을 재현시킬 순 없었을 테니 잘한 선택인 것 같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이 더 아프고 잔인하게 다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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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강풀 작가 작품이 원작이다. 영화 ‘후궁: 제왕의 첩’, ‘마이웨이’, ‘장화, 홍련’ 등에서 미술을 담당했던 조근현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135분. 15세 관람가. 29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