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사 측은 ‘장자연 팔기’라는 비난을 듣기 싫은 듯 직접 고인을 언급하는 건 꺼리고 있지만, ‘장자연 자살 사건’을 모티프로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걸 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지난 2009년, 연예계 성 상납 문제를 지적하며 자살한 신인 여배우.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피해자가 증언할 수 없으니 이 사건과 관련한 어떤 진실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건 이면에는 부조리한 사회의 추악한 것들이 곪을 대로 곪아있다는 추측 정도를 대중에 남겨 놓았다.
비극을 맞은 여배우를 위로하기 위해 혹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기 위해 영화 ‘노리개’는 제작ㆍ기획된 듯 보인다. 관객도 흥미로워했다.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는 첫날 2만여 명이 봐 관심을 증명했다.
영화는 정의를 추구하려는 기자와 여검사가 등장해 진실을 밝히려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 앞에 좌절한다. 관객은 사회적 모순으로 허탈감을 느낀다. 굵은 눈물을 흘리며 “제 이름은 정. 지. 희예요”라고 말하는 여배우의 안타까운 절규는 분노를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감독은 호기롭게 영화를 시작했지만 스토리 전개도 특색이 없고, 끝맺음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과거 문제를 어렵사리 끄집어내 지적했지만 관객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전혀 짚어내지 못했다.
신인 배우 민지현의 노출은 칭찬할 만하지만, 영화 흥미를 위해 자극적으로 집어넣은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듣는다. 권력의 힘으로 당사자들을 괴롭히는 에피소드가 있다거나 관객을 더 분노하게 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노리개’는 영화로 만들면 괜찮을 것 같은 소재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 신인 여배우의 사망 사건을 역행으로 따라가며 흥미를 끄는 듯했으나, 결국엔 재연 방송이 돼버렸다.
법대 출신인 감독은 법정공방 신도 많은 부분을 할애했지만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다. 반전도 없다. 사실을 나열하고, 과거 장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것 정도가 영화가 한 일이다. 허를 찌르지도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도 중요하건만 극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장자연 사건을 흉내 내고 있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는 전달이 목적”이라고 했지만 좀 더 용기를 냈거나 혹은 과감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시사 프로그램에서 많이 다뤄졌던 내용을 영화화했다면 달라야 했기 때문이다.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게 영화다.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좀 더 현실을 담거나, 정의를 위해 통쾌한 심판을 보여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영화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과 비교하는 이도 있지만 그런 흥행이 이어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흥행을 포기하고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으면 파장은 더 컸을지 모른다. 이 영화가 잘한 건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것 정도다.
영화는 “특정 배경, 인물,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명시했다. 노림수였으면 씁쓸하고, 연예계가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감독의 의도는 타당하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