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내 눈에는 보였어요. 충분히 영화로 만들 만한 이야기라고….”
‘극비수사’ 촬영을 앞두고 “상업 영화로도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곽경택 감독에게 배우 김윤석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만한 ‘보석’ 같은 것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극비수사’는 부산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유명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978년 당시 아이를 구하기 위해 극비로 수사를 진행했던 형사와 도사의 37년 간 감춰졌던 이야기를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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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 사건이 해결되면서 이미 결말이 모두에게 알려진 상황이다. 분명 이는 극에 궁금증을 자아내고, 긴장감을 유발하면서 관객을 끌어들여야 하는 상업영화에 있어서, 더구나 수사극이라면 더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진 못할 거라는 것이 통상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김윤석은 이 결말이 모두 알려진 영화가 관객들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내 눈에는 확실히 보였어요. 디테일이 있어서 충분히 영화로 만들 만한 소재였죠. 그리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보석 같은 게 숨어있다고 생각했어요. 수사극이라는 게 예측불가한 결말, 상상할 수 없는 반전, 따라갈 수 없는 서스펜스를 기대하게 하잖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감동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건 인간의 디테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극비수사’에는 있었어요. 분명 흥미를 끌만한 소재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극비수사’는 실화인 유괴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영화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다. 그 속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를 통한 인간적인 모습, 우리네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보통 캐릭터의 실존 인물이 있다고 하면 취재를 위해 직접 만남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김윤석은 그런 과정도 과감히 생략했다.
“만나볼 필요가 없었어요. 그들의 전기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흉내 낼 필요가 없는 거죠. 어차피 흉내를 내도 아무도 모르잖아요?(웃음) 영화의 초점 자체도 그렇게 맞춰진 것이 아니었던 거죠. 원칙을 지키는 형사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갔던 중년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곽경택 감독부터 김윤석, 그리고 유해진이 한 가지 뜻을 가지고 힘을 모아 관객들을 공감하게 했던 데에는 연출력과 이야기의 힘도 있지만, 이들의 호흡도 무시할 수 없다. 세 사람은 그야 말로 ‘찰떡궁합’이었다. 김윤석과 유해진은 평소 친분이 있었다고 하지만, 뒤늦게 만난 곽경택 감독까지 호흡이 그야 말로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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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극비수사’ 스틸 |
“감독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죠. 워낙 센 영화를 찍기로 유명한 감독님이셨잖아요. 그런데 이 시나리오는 양념도 없고 과장도 없더라고요. 사실 저는 마초 깡패가 나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저에게 들어온 시나리오들이 장르적인 기교가 센 것들이 많았어요. 그 중에서 제 눈에 ‘극비수사’의 시나리오가 들어온 거죠. 어쩌면 늦게 만나서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세 명이 다 40대잖아요. 각자의 경험을 가지고 만났으니까 더 편하더라고요. 대화도 잘 되고, 공감대 형성도 잘 되고. 유해진도 마찬가지에요. 관객들에게는 극중 유해진의 모습이 생소하겠지만 저는 알고 있어요. 진지하면서 때로는 애환이 있는 얼굴. 유해진 얼굴에 그게 있거든요.”
형사와 도사,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점차 공감대를 형성하고 또 다른 가정의 비극적인 사건을 해결하면서 오는 감동. 그 뼈 빠지는 노력에 대한 대가는 남들에게 돌아가지만 그들은 개울가에서 해맑게 뛰논다. 아무리 빼앗으려 해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소한 행복은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공치사를 빼앗기지 않고 지킬 수도 있었겠죠. 공치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막는 것도 소신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소신을 획득해야하는 게 아닐까요? 공길용 형사가 그 뒤로 계속 승진을 하고 반장이 되고 총경까지 가서 일선에서 있잖아요. 부당한 일을 딛고 더 위로 올라가서 다시는 부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도 소신이라고 생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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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흥행에 성공을 했지만 금방 잊혀지는 영화보다는 성공을 못하더라도 꼭 만들어져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출연을 합니다. 몇 년이 지난 뒤에 그 작품을 만들었던 감독이 더 잘돼 있고, 그 다음 작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도약의 밑거름이 된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죠. 또 생소한 것도 장르의 다양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봐요. 먼 훗날 내 필모그래피를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죠.”
사실 김윤석은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다.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 그는 주연 혹은 조연이라는 타이틀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김윤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연배우’ 딱지가 아닌, 좋은 작품을 하는 배우였다.
“10년 넘게 작품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선배가 되어 있잖아요. 물론 상업적인 논리는 이해를 하지만, 선배로서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갔으면 하는 게 저의 목표죠. 그렇게 되면 작품에도 분명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생각이에요. 지금의 제가 그런 선배라고 단언하진 그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다들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