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예로 들어보자. 당초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랠프 네이더가 출마했고, 지지가가 겹치는 고어의 표를 갉아먹었다. 부시는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다수결이 ‘표의 분산’에 무척 약하다는 증거다.
다수결 선거에서는 모든 유권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신경을 쓸수록 불리해진다. 승리를 위해선 일정 수의 유권자에게 1순위를 얻어내기만 하면 된다. 모두를 신경 쓰지 않을 때 더 유리해진다는 공학적 계산 아래, 선거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을 조장하고 사회 분열을 부추기게 된다.
이 책은 250년 전부터 시작된 투표에 관한 논의를 소개하고, 다수결이 과연 민주주의를 이끌 제도로 합당한지 반론을 제기하는 책이다. 흥미롭게도 경제학자가 쓴 정치이론서다. 사카이 도요타카 게이오대 경제학부 교수는 다수결이 다수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데 적합한 방식이 아니라고 수학적 반론을 제기한다.
민주적이지 않은 투표는 존재하지만, 투표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 투표를 할 것인지가 문제다. 저자는 “1인 1표를 행사해 규칙에 따라 결정했으므로 민주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형식이라는 빈껍데기만 남기고, 민주적이라는 말의 내용은 신경 쓰지 않는 태도일 뿐”이라고 다수결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선거제도에 관한 학문적 실험은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도 전 파리에서 시작됐다. 선구자 두 사람은 장 샤를 드 보르다와 마르퀴 드 콩도르세였다. 기사 작위를 가진 보르다는 파리왕립과학아카데미에서 다수결을 연구했다. 21명을 대상으로 3명의 후보자가 투표를 한다고 가정했다. X, Y, Z는 차례로 8, 7, 6표를 얻어 X가 1위를 했지만, 동시에 각각 1~3위로 점수를 매길 경우 13명은 X를 최하위로 꼽았다. 이 결과를 “2명의 운동선수가 체력을 완전히 소진한 뒤, 제3의 약체에게 진 꼴”이라 설명했다. 3자 대결이 아니라 X 대 Y, 혹은 X대 Z 식의 맞대결이 이뤄질 경우 X는 두 후보 모두에게 진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실제로 보르다 투표법을 구체화한 나라도 있다. 적도 근처 태평양에 나우루 공화국이 있다. 인구 1만 명에 불과한 이 작은 섬나라는 단원제 국회를 운영하며 3년에 한 번 국회의원을 뽑는다. 이들은 2명의 의원을 뽑는 선거구에서 시민들이 1위에 6점, 2위에 3점, 3위에 2점씩 차등점수를 매긴다. 당선은 총점이 높은 2명이 된다. 선거를 고안한 데즈먼드 다우돌 법무부 장관의 이름을 따 이들의 제도는 ‘다우돌 투표법’이라 불리고 있다. 이 제도의 단점은 있다. 1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서 다수결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슬로베니아에서도 소수민족인 헝가리계와 이탈리아계를 대표하는 특별 국회의원을 1명씩 선출할 때 보르다 투표법을 사용한다. 또 다른 대안으론 승인 투표가 있다. 미국의 스티븐 브램스와 피터 피시번이 쓴 ‘승인 투표’라는 책을 통해 유명해졌는데, 유권자가 모든 후보에게 O나 X를 주는 방식이다. 이 방법에는 약점이 있다. 반대당에 X를 몰아준다면 다수당이 상위권을 독점하게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소개할 방식은 콩도르세의 제안이다. 1785년 그가 발표한 ‘다수결 확률 해석 시론’이란 역사적 저작은 보르다의 점수 투표법을 비판한다. 보르다의 세 후보가 각각의 후보와 맞대결을 벌인 뒤 복수의 대결에서 가장 많이 이기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민의’를 가장 분명하게 반영할 수 있다고 추론한 것이다. 하지만 ‘콩도르세의 역설’이란 말도 유명하다. X가 Y에 승리하고, Y가 Z에 승리하지만, Z는 X에 승리하는 순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다수결은 왜 소수파가 다수파의 의견에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강조한다. 현대의 국가들은 소선거구제를 주로 사용한다. 일본의 개헌 논의를 비판하며 저자는 2014년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약 48%의 지지로 76%의 의석을 확보한 것은 민의의 왜곡이라고 지적한다. 심지어 ‘다수결의 폭주’라고 비판하며, 만장일치에 가까운 개헌 기준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64%의 다수결 원칙에 따라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의 최소 기준이 64%를 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국제 뉴스는 다수결의 역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브렉시트와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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