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MBC ‘압구정 백야’ 속 여주인공 백야(박하나 분)는 이제 막 발걸음을 시작한 화가로 나온다. 백야의 새언니인 김효경(금단비 분)과 러브라인을 이루는 육선중(이주현 분)도 유명한 화가다.
작년 11월에 종영한 아침드라마 MBC ‘폭풍의 여자’의 주인공 한정임(박선영 분)도 우여곡절 끝에 이름을 널리 알리는 화가가 됐고,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김미영(장나라 분)은 엘리 킴이라는 이름으로 강연까지 하는 유명한 화가로 변신해 이건(장혁 분) 앞에 나타났다.
이처럼 꽤 많은 드라마에서 화가라는 직업을 다룬다. 이는 ‘화가’라는 직업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다. 채광이 좋은 화실 안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구불구불한 웨이브진 머리를 살짝 넘기면서 붓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아리따운 여성. 화가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 화가는 어떤 일상을 살까. 직접 현재 활동 중인 공혜주 화백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실 속 화가와 브라운관 속 화가의 차이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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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일구 기자 |
◇ 독특한 이력? 충분히 가능하죠
TV 속의 화가들은 대부분 독특한 이력들이 있다. 전직을 했거나 어려운 환경을 딛고 화가로 명성을 떨치는 식이다. 공혜주 화백은 “독특한 이력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며 자신의 이력을 예로 들었다. 공혜주 화백 또한 유아교육학과를 전공하고 유치원 선생님으로 재직하다 화가로 전직한 경우기 때문이다.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입시미술에서는 디자인을 주로 가르치기 때문에 회의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유아교육학과를 가게 됐고, 유치원 선생님으로 잠깐 직장 생활을 했었죠. 하지만 역시, 미술을 해야겠더라고요. 제 독특한 이력은 또 있어요. KBS1 ‘우리말겨루기’ 1등 출신이랍니다.(웃음)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마음에 신청한 건데 운이 좋아서 결국 최후의 1인까지 남았어요. 저는 사실 뭘 하기 전에 걱정보다는 ‘일단 하고 보자’는 게 있거든요. 그게 화가에 도전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었던 것 같고요. 처음에는 저도 처음에는 특이한 제 이력이 콤플렉스였지만, 지금은 배움 이상의 열정이나 타고난 감성, 도전 정신 같은 것이 화가의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된 화가의 일상은 어떨까. 공혜주 화백은 “24시간 작품을 생각한다”고 입을 열었다. 출퇴근이 없는 자유로운 일상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결코 자유롭지 않단다. 퇴근하면 일 생각을 싹 지울 수 있는 직장인들과는 달리, 하루 종일 작품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직장인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고 공혜주 화백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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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운명처럼널사랑해 김미영/압구정백야 육선중/폭풍의여자 한정임 |
“정말 24시간 작품만 생각해요.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을 때에도 한켠으로는 작품을 생각하고 있고요. 일반적인 일상을 말씀 드리면, 역시 늦게는 일어나요. 느지막이 일어나 밥 먹고, 음악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다가, 저녁밥 먹고, 또 그림 그리다가 늦은 새벽에 잠들어요. 저는 원래 밤에 집중이 잘 되는 스타일이라 밤낮이 좀 바뀐 편이죠. 정말 밥, 그림, 밥, 그림의 반복이예요. 저는 집에 작업장을 차려놔서 한창 작업 중인 기간에는 거의 집 밖에 나오지 않아요. 씻지도 않고, 옷도 후줄근하게 입고.(웃음)”
그러면서 공 화백은 “사실 화가라는 직업이 굉장히 힘든 직업”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화가는 정말 많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적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이 오랫동안 연습생을 거쳐서 데뷔를 하고, 그 속에서도 몇몇만 톱스타가 되는 과정이 가장 비슷하다고 말했다. 거기에서 오는 심리적, 경제적 압박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화가는 정말 많아요. 하지만 유명해지거나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죠. 보장된 것이 없으니 그만큼 심리적인 아픔도 많아요. 경제적인 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갤러리 대관하는 비용이나 해외 아트 페어에 참여하는 경비도 사비로 해결하거든요. 그래서 미술학원이나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서예요. 전시회를 열면 작품 판매가 주 수익인데요, 첫 전시회에는 주로 가족이나 지인이 구매를 해주세요. 하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화가들은 이마저도 힘들죠. 정말 열정 없으면 못하는 직업인 것 같아요. 오로지 그림만 생각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화가라는 게.”
◇ 화가의 열정에 초점을 맞춘 작품 나오길
브라운관 속 화가는 늘 유명하고 인기가 높은 화가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건 전체 드라마 중 한 두 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화가라는 ‘허울’만 씌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에 가깝다. 이에 대해 공혜주 화백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가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의 드라마처럼 화가의 삶도 충분히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드라마의 중심 스토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드라마 속 눈 뜨고 나니 유명해진 화가들을 보면 그냥 웃음만 나와요. 말이 안 되는 거죠. 유명해진다는 건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건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미술계가 대중들과 가깝지는 않기 때문에 유명해지기 더더욱 힘들거든요. ‘그냥 드라마구나’라고 생각하고 넘겨요. 하지만 씁쓸함은 있죠. 그 유명해지기 위해 노력한 과정들은 생략되니까요. 사실 화가도 충분히 드라마 주인공이 될 만큼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한 직업이거든요. 치열하고 열정 넘치고요. 이런 부분들이 담겨지지 못한 걸 보면 아쉽기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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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일구 기자 |
또 공혜주 화백은 전형적인 이미지가 담긴 화가들만 등장하는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남자 화가는 늘 안 씻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몸을 벅벅 긁는 모습을 한다든지, 아리따운 여성들이 붓을 잡고 캔버스를 보고 있는 이미지 같이 전형적인 이미지로 화가가 반복해서 등장하니 대중들도 이런 화가들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며 걱정했다.
“제가 나가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화가 안 같다’는 말이예요. 디자이너 같은 신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나. 그래서 왜냐고 물어보면 ‘이미지가 화가 같지 않다’고 말하더라고요. 하지만 화가도 다 제각각이에요. 남자 분들 중에는 정말 세련된 분들도 많아요. 드라마에서 자주 쓰이는 ‘외국을 다녀온 후 유명해진다’는 설정도 그래요. 외국에 나갔다 온 화가들은 정말 많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드라마 속 화가를 보고 ‘외국 다녀오면 유명해지는 구나’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죠. 전형적인 ‘화가’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드라마 작가님들이 좀 더 다양한 화가들을 만나보셨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런 공혜주 화백이 바라는 드라마 속 화가들의 모습은 뭘까. 그는 “99년도에 방영했던 드라마 ‘토마토’에서 김희선 씨가 구두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데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고 드라마 얘기를 꺼냈다.
“그 드라마 속 주인공이 구두를 디자인할 때 옥을 사용해요. 주변에서는 ‘깨질 것’이라고 다 말렸지만, 그대로 강행하죠. 그러다가 심사 전에 옥이 ‘와장창’ 깨져 버려요. 주인공이 실수를 한 거죠. 하지만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실수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가며 마침내 꿈을 이루죠. 화가의 삶도 이런 실수와 깨달음의 반복이에요. 그 성장 과정이 좀 더 그려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화가들은 작업만 하기 때문에 순수함이 많고 어린아이 같아요.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고 작품에 그 아픔들이 투영되곤 하죠. 그런 화가의 순수함과 열정을 잘 표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양화가 공혜주는?
학력- 세종대학교 교육대학원 유아교육과 석사
데뷔- 2013년 대한민국 남농미술대전 특선
2013년 대한민국 누드미술대전 입선 / 2012년 대한민국 청원미술대전 우수상 / 2012년 대한민국 강남미술대전 입선 등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