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수장간 담판을 하루 앞둔 27일 한·일 양국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날선 신경전을 벌였다.
특히 일본이 자국 언론을 동원해 대대적인 여론 공세에 나선 가운데 ‘위안부 문제의 일본 정부 법적 책임에 대한 인정’을 받아내려는 한국 정부와 ‘이번이 마지막이고 최종’이라는 확답을 받아내려는 일본 정부가 정면으로 맞부딪치고 있다. 정작 28일 외교수장간 회담 이후 한일 관계가 어떻게 풀려갈지 초미의 관심사다.
이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해) 저희 입장은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청구권 협정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이미 법적으로 해결됐다는 일본 측 주장을 에둘러 반박한 것이다.
같은 날 외교부 청사에서 비공개로 열린 제12차 국장급 협의도 전반적으로 굳은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한국 측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일본 측 이시카네 기미히로 외교부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양국 간 외교장관회담 전초전을 벌이며 막판 쟁점조율에 주력했다.
외교부는 이날 윤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28일 오후 2시부터 외교부 청사에서 1시간 정도 회담을 가진 뒤 오후 3시 15분부터 외교부 3층 국제회의장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공식발언 이외에 별도의 질의응답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과 기시다 외무상의 만찬일정도 검토중이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협상 결과에 따라 모든 카드는 열려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일본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을 종합해보면 기존 한국 정부의 요구사항은 물론 피해 당사자들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요구사항과도 괴리가 크다. 이에 따라 28일 양국 외교수장 간 담판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결정적인 밑돌을 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양측 정부 모두 큰 틀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의지는 강하다.
청와대에서는 한·일 외교장관회담에 대해 공식적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패를 보이지 않겠다는 얘기다. 대언론 창구를 외교부로 일원화한 다음 일단 회담 결과를 지켜보자는 기류가 강하다.
정부 안팎에서는 “아베 총리가 기시다 외무상을 ‘빈손’으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도 최근 일본 측에서 미확인 보도들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불쾌감이 만만찮은 분위기다. 지난 26일 외교부 조준혁 대변인이 나서 일본 언론들이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추측성 보도를 쏟아내는 것에 대해 “(일본이) 과연 진정성 있는 자세를 갖고 이번 회담에 임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은 게 대표적인 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일본 측으로부터 위안부 문제의 법적책임에 대한 인정을 받아내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이에 대해 일본의 진전된 입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국내 여론은 물론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사회로부터 거센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반면 일본은 한국 측으로부터 ‘이번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해결’이라는 확답을 받아내는데 집중하는 한편 ‘눈엣가시’인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경기 광주시 퇴촌면 위안부 피해자 시설 ‘나눔의 집’은 생존 위안부 피해 할머니 46명의 의견을 모아 단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일본의 사죄·배상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생존 피해자인 이옥선(88) 할머니는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지 않는 한 사죄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베 총리가 직접 나눔의 집으로 와 피해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할머니들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남산 인근에 조성할 위안부 ‘기억의 터’ 추모공원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유희남(88) 할머니는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를 하기도 전부터 소녀상 이전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전하겠다는 사과에 무슨 진정성이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도 26일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위안부를 운영했고, 여성들이 본인 의사에 반해 위안부로 일하는 상황에 놓였고, 일본 위안부 제도는 중대한 인권침해였다는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이 (회담 결과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관련한 기금의 액수와 성격 역시 한·일간 견해차가 현격하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 측은 이 기금 규모로 최대 20억엔(약 194억 5000만원)을 주장한 것으로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서울 = 김성훈 /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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