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64) 청와대 정책실장 임명은 그야말로 '깜짝 발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 이후 청와대 직제에서 사라졌던 정책실장을 부활시키기로 결정하자 세간에선 대선캠프 출신의 '복심'이 임명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한때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거론되기도 했으나 문 대통령의 최종 선택은 장하성 고려대 교수였다.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장 실장 인선 배경에 대해 "한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한 경제학 석학이자 실천운동가"라며 "과거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사회 정책을 변화시켜 경제민주화와 수득주도 성장, 국민 성장을 함께 추진할 최고의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참여정부의 초대 정책실장이 이정우 경북대 교수였던 것과 외견상 비슷해 보이지만 장 실장이 '문재인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파격'이라는 평가다.
장 실장은 2012년 대선때 '정책네트워크 내일' 초대 소장을 지낼 정도로 안철수 후보와 가까워 한때 '안(安)의 경제 멘토'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 해 4·13 총선을 앞두고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이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제안했으나 고사한 일화도 있다. 이 같은 배경으로 인해 장 교수 자신도 발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가 문 대통령이 직접 걸어온 전화를 받고 동참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적으로 김상조 교수 발탁에 놀랐고 윤석렬 지검장,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인사도 그랬다. 새 정부 인사에 감동했다"며 "측근들이 초기에 자리잡으면 정치적 편향성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해소됐다. 좋은 나라 만드는 데 한번 힘을 보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손발을 맞출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에 대해선 "그 분이 아주대 총장일 때 제 책을 읽고 강연에 초청한 인연이 있다"며 "대통령(생각)과 정부 부처의 실행이 일치되도록 조율하겠다"고 말했다.
장 실장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소득주도 성장, 양극화 해소 등 '문재인노믹스' 실현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지난 20년간 국가경제는 성장했는데 성장한만큼 가계소득은 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제일 낮다"며 "소득증대로 소비가 창출되고, 기업의 새로운 투자가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로 가면 그것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가장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고용 창출->가계소득 증대->소비 확대->기업 생산·투자 촉진' 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해법을 찾겠다는 뜻이다.
다만 소득 양극화 문제에 대해 단기적 대증요법 대신에 '구조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장 실장은 "단편적 대응으로는 어렵고 결국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며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겠다. 내각이 구성되면 구체적인 구조적 변화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벌 문제에 대해 "기존 재벌에 대해 인위적, 강제적 조치를 취한다는 건 사실 빈자리를 메우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성장이 없다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며 "재벌개혁 문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은 대기업이든 재벌이든 소상공인이든, 모두 일자리로 매우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반기업 성향으로 오해하는 시선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장 실장은 또 "재벌개혁에 '두들겨팬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보다 함께 잘 사는 구조를 만드려면 기업 생태계가 균형잡혀야 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강자와 성공적 개혁, 새 중소기업의 성공신화가 만들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세 문제에 대해서도 법인세 일방 인상은 해결책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당연히 고소득이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대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낮고 유보금은 많다"면서도 "단순히 법인세율만 올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 실장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해 새 틀을 만드는데, 그 그릇이 정부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 경제"라며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이 공정해야 하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그 결과가 정의롭게 분배돼야 한다"고 문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를 인용하기도 했다. 공공일자리 정책과 관련해선 "우선적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이 공공부문"이라며 "궁극적으로 민간부문 일자리가 창출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장 실장은 고려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뉴욕 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 펜실베니아주립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미국 휴스턴대 교수를 거쳐 1990년부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일하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대안 모색에 천착해왔다.
진보 성향의 학자지만 실물경제 감각도 꾸준히 키워왔다는 평가다. 외환위기 이후 소액주주 운동을 주도하고 2006년엔 직접 '장하성 펀드'로 불린 기업지배구조개선 펀드를 만들기도 했다. 이로 인해 '삼성 저격수'로 불리기도 했으나 대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려는 취지였다는 평이다. 참여정부 때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내고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 이사로 있는 장하진 전 장관이 친누나다. 막내동생인 장하원 전 하나금융연구소장도 옛 열린우리당 정책실장을 지내는 등 민주당과 인연이 깊다.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조부는 독립운동을 했던 고 장병상 옹이고, 삼촌은 3선 의원을 지낸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다. 유명 경제학자인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는 사촌 사이다.
■ He
▲1953년 광주 ▲고려대 경영학과, 미국 뉴욕주립대 얼바니대학원 경제학 석사,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영학 박사 ▲금융개혁위원회 자문위원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한국금융학회 회장 ▲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 겸 고려대 부설 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
[신헌철 기자 / 오수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